선덕여왕
진평왕의 뒤를 이어 덕만공주가 신라의 제27대 왕이 되었습니다.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어서 따님이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분이 바로 신라 최초의 여자 임금인 선덕여왕입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신하들과 백성들은 만날 때마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마음을 놓았답니다. 선덕여왕은 그 어떤 왕 못지않게 지혜로웠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여왕의 현명함에 혀를 내두르며 칭찬했습니다. 백성들은 진심으로 여왕을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세 가지 일을 예언한 선덕여왕 - 첫 번째
선덕여왕은 16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동안 여왕은 세 가지 일을 미리 알아맞혔답니다. 그중 첫 번째가 모란꽃 이야기입니다. 당나라를 방문했던 사신이 당나라에서 여왕께 선물을 보내었다 아뢰고 선물로 가져온 비단 천을 펼치자 붉은색, 자주색, 흰색 모란꽃을 그린 그림과 꽃씨 세 되가 나왔습니다.
그림 속 모란꽃의 아름다움에 신하들은 탄성을 터뜨렸습니다. 꽃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선덕여왕이 천천히 입을 떼었습니다.
"이 꽃은 빛깔은 고우나 분명 향기가 없을 것이오. 이 꽃씨를 뜰에 심어 보도록 하시오."
신하들은 이처럼 빛깔이 선명하고 고운 꽃에 향기가 없을 거라는 선덕여왕의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뜰 한쪽에 꽃씨를 뿌렸지요. 정성껏 흙을 덮고 물을 주며 꽃들이 피어나길 기다렸습니다.
신하들은 매일같이 뜰을 거닐면서 궁금해했고 몇 달이 지나자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신하들은 뜰에 핀 모란꽃을 가리키며 곧 있음 향기가 날거라 수군거렸습니다. 울긋불긋한 꽃잎들이 조금씩 피어나더니 어느새 뜰은 온통 모란꽃 천지가 되었고 꽃씨를 심는 데 앞장섰던 신하가 모란꽃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습니다. 그러다 흠칫 놀라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여왕님의 말씀처럼 향기가 없다 말했습니다. 다른 신하들도 모란꽃에 얼굴을 묻고 향기를 맡아보았습니다.
뜰에 있던 신하들은 선덕여왕에게 몰려가 향기가 없으니 놀랍다며 어찌 그 일을 아셨는지 물었습니다. 감탄하는 신하의 말에 선덕여왕은 여유 있게 웃으며 답하길 당나라에서 보낸 모란꽃 그림을 자세히 보라 하였지요. 신하들은 서로 눈치만 볼뿐 아무것도 알아채질 못하니 선덕여왕이 말하길, "향기로운 꽃에는 벌과 나비가 따르게 마련이거늘, 그림 속 꽃에 나비가 없지 않습니까? 이는 곧 당나라 황제가 내가 혼자 지내고 있음을 빗대어 보낸 것이오." 듣고 있던 신하들은 여왕의 지혜로움에 크게 놀랐답니다.
세 가지 일을 예언한 선덕여왕 - 두 번째
몹시도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가족들과 고구마를 먹던 사람들의 귀에 난데없는 개구리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겨울에 울어댄 개구리를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문을 열고 소리 나는 쪽을 내다보았습니다. 개구리 소리는 바로 영묘사(선덕여왕 때 세워진 절로 대궐 서쪽에 위치) 옥문이란 연못 쪽에서 들려왔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개구리들은 잠잠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삼일째가 되자 더 시끄럽게 울어댔지요.
백성들은 모이기만 하면 개구리 이야기에 열을 올렸고 이 이야기는 대궐에까지 전해져 선덕여왕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신하들은 선덕여왕에게 대궐 밖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였고 지난번 모란꽃 그림을 기억하던 신하들은 기대에 찬 얼굴로 선덕여왕에게 어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여왕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알천과 필탄을 불러오라 하였습니다.
"경들은 당장 군사 2천 명을 이끌고 서쪽에 있는 여근곡을 찾아가시오. 그곳에 틀림없이 백제 군사가 숨어 있을 것이니 습격하여 섬멸토록 하시오!"
여왕의 명에 알천과 필탄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졌습니다.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와 적군이 숨어 있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신하들은 선덕여왕을 굳게 믿었기에 걱정 없이 알천과 필탄을 배웅했습니다.
각각 1천 명의 병사들을 거느린 알천과 필탄이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서쪽으로 말을 달렸습니다. 도착한 병사들은 여근곡을 찾아 재빠르게 주위를 에워쌌고 알천과 필탄은 공격을 명령했습니다. 공격 명령을 받은 신라 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계곡 쪽으로 달려가 활을 쏘고 창을 휘둘렀더니 과연 그곳에는 백제 군사 5백여 명의 숨어 있었습니다. 계곡 깊숙이 숨어서 기회를 엿보던 백제 군사들은 갑자기 공격해 온 신라 병사들에게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습니다. 백제군을 이끌었던 우소장군의 죽음으로 신라군의 기세는 하늘 높이 치솟았고 알천과 필탄은 얼마 남지 않은 백제 군사들을 공격했습니다.
이 때 말을 탄 백제 군사 1,200명이 무섭게 달려오고 있다는 부하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기충천한 신라 병사들의 기를 꺾을 수는 없었지요. 격렬한 싸움 끝에 백제군을 한 명도 남김없이 섬멸하였습니다. 신라군이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자, 대궐 안은 또다시 시끌벅적해졌습니다. 선덕여왕의 지혜로움이 다시 한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백제군이 숨어 있는 것을 어찌 아셨사옵니까?"
궁금해하는 신하들 앞에서 여왕은 온화한 미소로 말했습니다.
"성난 개구리는 군사의 모습이오. 거기다 옥문이란 여자의 은밀한 곳을 이르는 말로 그 빛깔은 희고, 흰 빛깔은 곧 서쪽을 가리킵니다." 그리하여 군사가 서쪽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소."
신하들은 선덕여왕의 혜안에 다시 한 번 감탄하였습니다.
세 가지 일을 예언한 선덕여왕 - 세 번째
어느 날, 여왕은 신하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선덕여왕은 어느 때와는 달리 조금 굳은 얼굴이었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나를 도리천(불교에서 말하는 옥황상제가 있는 하늘) 가운데 장사 지내시오."
그러면서 여왕은 자신이 죽을 날짜를 말했습니다. 신하들은 어찌 그런 말씀을 하냐며 도리천이 어디냐 물었지요. 도리천은 낭산의 남쪽이라 알려주었습니다.
신하들은 혈색 좋고 건강한 여왕의 얼굴을 보며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나 선덕여왕이 말한 그 날이 되자, 놀랍게도 여왕은 예언대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백성들과 신하들은 큰 슬픔에 잠겼지만, 여왕의 말대로 낭산 남쪽(몇십미터 정도의 나지막한 언덕)에 여왕의 무덤을 만들었답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신라의 제30대 왕이 된 문무대왕이 사천왕사를 지었는데 바로 선덕여왕의 무덤 아래였습니다. 여왕의 유언을 잊지 않고 있던 신하들은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불교 경전에 '도리천은 사천왕 하늘 위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십 년 후의 일을 과연 선덕 여왕은 어찌 알았을까요? 이 일로 백성들은 선덕여왕의 지혜와 영험함을 오래 기억하게 되었고 그 후 신라에는 여자 임금으로 진덕, 진성여왕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 중 으뜸은 선덕여왕이라고 합니다.
***선덕여왕은 성은 김씨, 이름은 덕만입니다. 진평왕의 장녀로 어머니는 마야 부인이고,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왕위에 추대되었습니다. 선덕여왕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은 '성골' 이라고 하는 특수한 왕족 의식이 배경이 되었습니다.
자장 법사를 당나라에 보내서 불경을 들여오기도 한 선덕여왕은 생전에 분황사를 창건하기도 했으며 유명한 첨성대와 황룡사 9층 목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선덕 여왕을 옆에서 도운 그 시대의 유명한 장군이 있었는데, 바로 김춘추와 김유신 장군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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