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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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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의 왕자를 사랑한 낙랑공주


호동왕자

호동왕자는 고구려의 왕자였습니다. 얼굴이 잘생기고 마음씨도 착해서 모든 사람들이 따르고 좋아했습니다. 특히 왕자의 아버지인 대무신왕(유리왕의 셋째 아들로 고구려 제3대왕)은 총명한 호동 왕자를 늘 곁에 두었습니다. 궁궐을 산책하거나 사냥을 나갈 때면 꼭 호동왕자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호동왕자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기심이 많은 첫째 왕비였습니다. 호동왕자는 왕의 둘째 부인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첫째 왕비는 왕이 호동왕자를 가까이 하자, 자신이 낳은 아들이 왕위에 오르지 못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따뜻한 봄날 말을 탄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제일 앞서 달리는 호동 왕자는 늠름해 보였지만, 왠지 얼굴이 밝지 못했습니다. 궁궐의 모든 일들이 신나고 재미있었지만 자신을 차갑게 대하는 왕비를 생각하면 궁궐이 싫어졌지요.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옥저(함흥 일대를 중심으로 한 부여 계열의 부족 사회로 56년경 고구려에 편입되었음)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낙랑의 왕 최리

갑자기 숲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호동왕자는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고 숲에서 검은 물체가 튀어나왔습니다. 왕자는 쏜살같이 화살을 뽑아 활에 겨누고 당겼습니다. 검은 물체가 큰 소리를 내며 고꾸라졌고 왕자를 따라온 젊은이들이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바로 멧돼지였습니다. 황소만한 멧돼지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는데 여러 개의 화살이 꽂혀 있었습니다. 호동왕자의 화살은 멧돼지의 머리 한가운데에 꽂혀 있었습니다.


"둥둥둥둥? 쿵쿵쿵쿵!"

갑자기 북과 여러 가지 악기를 든 몰이꾼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맨 앞에 앞장선 무섭게 생긴 장군이 호령하길 감히 대왕의 사냥을 방해했다며 사냥감을 내놓으라 하였지요. 이에 질세라 호동왕자도 내가 잡았으니 내놓을 수 없다 하였지요. 왕자의 우렁찬 목소리에 장군이 주춤했습니다.  


이 때 낮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낙랑의 땅에서 잡았으니 낙랑의 것이 아니겠소?"

잘 차려입은 남자가 호동왕자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낙랑의 왕 최리 였습니다.  낙랑공주의 아버지이며 한 지역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왕'이 아니라 '태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낙랑의 왕은 왜 남의 것을 빼앗는지 물었고 왕자는 당당하게 고구려의 왕자 호동이고 상황이 다급하여 활을 쏜 것뿐이지 빼앗으려 한 것이 아니라며 방해가 되었으면 사과드린다 하였지요. 왕자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낙랑 왕은 늠름한 호동왕자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비록 지금은 고구려와 사이가 좋지 않으나 사과의 뜻으로 초대하고 싶다 하였습니다. 낙랑왕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호동왕자는 낙랑 왕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만남

낙랑 왕은 호동왕자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풀어 맛있는 음식과 술을 대접하였는데 호동왕자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바로 낙랑 왕의 옆에 앉아 있는 예쁜 소녀인 낙랑공주였지요. 그 소녀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부끄러운 마음에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왕자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낙랑 왕이 소녀를 데리고 와서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내 딸이오만, 둘이 혼인을 하는 것이 어떻겠소?"

낙랑 왕의 갑작스런 의견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못했지만 잠시 후 얼굴을 마주한 왕자와 낙랑공주는 서로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며칠 후 고구려에 돌아온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와 보낸 날들을 생각하며 행복해 했으나 차마 적국의 공주와 혼인을 약속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왕자를 아끼는 왕이라도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호동왕자의 아름다운 얼굴은 근심으로 어두워졌습니다.


어느 날, 왕이 호동왕자를 불러 무슨일이 있는지 물었고 호동왕자는 자신만을 기다리는 낙랑공주를 생각하며 낙랑에서의 모든 일들을 털어놓았습니다. 왕자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몹시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호동왕자를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큰 벌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호동왕자가 궁궐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첫째 왕비가 왕에게 말하길, "우리가 영토를 넓히려면 낙랑을 쳐야 합니다. 허나 낙랑에는 적이 침입하면 저절로 울려 소리를 내는 신기한 북과 나팔이 있습니다. 만약 호동을 시켜 북과 나팔을 못 쓰게 만들면, 낙랑을 쉽게 빼앗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왕비의 말에, 낙랑을 늘 골칫거리로 여겼던 왕도 기뻐했습니다.


궁궐에 갇힌 호동 왕자는 낙랑공주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왔지요. 그날 밤, 첫째 왕비가 왕자를 찾아와 낙랑공주와 결혼하고 싶다면 낙랑의 북과 나팔을 찢으면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편지를 보내라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라구요. 왕비의 말을 들은 호동왕자는 그날 밤 괴로움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한편, 낙랑공주도 호동왕자가 떠난 뒤, 매일 왕자를 그리워 했습니다. 어느 날 공주가 산책하고 있을 때, 낯선 남자가 다가와 호동왕자의 편지를 전해 주고 급히 사라졌습니다. 바로 호동왕자측에서 온 편지였지요. 그날 밤, 공주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내 나라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내 사랑을 따라갈 것인가.....'  낙랑 공주는 아버지와 호동 왕자를 생각하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고구려의 침입과 낙랑공주의 배신

달도 없이 칠흑같이 어두운 어느 날 밤, 낙랑군의 무기 창고에 몰래 다가선 낙랑공주는 가슴에 숨겨 온 칼을 꺼내어 북을 찢고 나팔을 들어 바닥에 힘껏 내리쳤습니다. 바닥에 던져진 나팔은 두 동강 나고 말았습니다. 낙랑공주도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그날 밤, 고구려의 군사들이 낙랑을 공격했습니다. 북과 나팔이 울리지 않았으므로 아무 걱정 없이 잠들었던 낙랑의 군사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고구려의 군사들을 막아 낼 수 없었습니다. 낙랑공주는 군사들에게 잡혀 낙랑 왕 앞으로 끌려왔습니다. 낙랑공주의 배신에 치를 떨던 낙랑 왕은 친히 공주를 벌한다며 칼로 베었습니다. 공주는 그 순간에도 호동왕자를 한번만 뵙기를 바라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물밀듯이 몰려온 고구려 군사들은 낙랑의 성으로 쳐들어갔고 낙랑 왕도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호동왕자는 낙랑공주를 찾아 온 성 안을 헤매고 다니다 쓰러져 있는 공주를 발견하였지요. 이미 죽은 공주를 생각하며 호동왕자는 후회하였고 날이 밝자 호동왕자는 햇볕이 잘 드는 곳에 공주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호동왕자의 죽음

호동왕자가 승리하고 돌아오자 왕은 무척 기뻐했습니다. 첫째 왕비는 왕의 왕자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자 불안해진 나머지 호동왕자를 모함하는 말을 했습니다.

"호동이 전하의 총애를 믿고 저를 업신여깁니다."

은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왕비의 모함이 계속되자, 결국 왕비의 말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호동왕자에게 벌을 내리기로 하였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은 왕자에게 왜 사실을 밝히지 않느냐 물었습니다.

"내가 사실을 아뢰어 왕비의 모함을 밝힌다면, 그 또한 아버지께 걱정을 드리는 것이니 효가 아니다." 결국 낙랑 공주를 잃은 슬픔에 괴로워하던 호동 왕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답니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는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에 나온 내용을 기반으로 추측하여 만든 이야기입니다. 낙랑국의 위치도 논란이 되는 부분입니다. 낙랑왕이 호동왕자에게 북쪽나라 왕의 아들이냐 물은 대목으로 인해 낙랑이 고구려의 남쪽에 위치했을 거란 추측이지요. 그리고 대무신왕이 낙랑을 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낙랑 왕에게 딸을 청해서 그 딸을 데러다 며느리로 삼은 후에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서 무기를 부수게 했다는 내용도 삼국사기에 있습니다.


옛날 어린시절에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보았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자신의 사랑때문에 아버지인 낙랑 왕뿐 아니라 백성들을 배신하여 수많은 죽음을 발생케 했으니 그저 '인과응보'란 사자성어가 떠오를 뿐입니다.


신라 문무왕때 만들어진 부석사 범종각으로 북은 적을 위협하여 격퇴할 때나, 제사나 주술용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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