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신라시대 화랑도

반응형

화랑도

화랑도는 신라시대의 청소년들이 모여 수양을 쌓던 단체입니다. 화랑들은 평상시에는 산과 강을 돌아다니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학문과 무술을 닦으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길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싸움터로 나아가 용감히 싸웠습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영토를 넓히는 데에는 화랑의 역할이 컸습니다.

 

화랑도는 신라 제24대 진흥왕 때 만들어졌습니다. 애국 소년단인 화랑도에는 지도자격인 화랑이 있었고 그 밑에 낭도가 있었습니다. 화랑도가 지켜야 할 '세속 오계' 는 원광 법사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첫째,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길 것.

둘째, 효성으로써 부모를 섬길 것.

셋째, 믿음으로써 벗을 사귈 것.

넷째, 싸움에 나가서는 물러서지 말 것.

다섯째, 살아 있는 생물은 함부로 죽이지 말 것.

 

화랑이라는 말은 '꽃처럼 아름다운 남성' 이라는 뜻입니다. 화랑은 무엇보다도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신라의 삼국 통일에 크게 힘썼으며, 한편으로는 골품제 사회에서 발생하기 쉬운 여러 계층 간의 긴장과 갈등을 풀어 나가는 데도 이바지하였습니다. 태종 무열왕(김춘추) 때의 김유신 장군도 화랑 출신으로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었습니다.

http://hola-sy815.tistory.com/14

 

신라장군 김유신 일화

김유신의 탄생과 성장과정 신라의 진평왕 17년, 김서현의 집에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김서현의 아내 만명 부인이 첫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아이의 얼굴에서 밝은 빛이 나고 팔다리가 튼튼..

hola-sy815.tistory.com

<모죽지랑가>의 주인공 죽지랑도 김유신과 함께 부원수가 되어 삼한을 통일하고 진덕, 태종, 문무, 신문왕의 4대에 걸쳐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던 화랑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화랑을 사모하는 노래 - 모죽지랑가

신라 제32대 효소왕 때 죽지랑 이라는 화랑이 있었습니다. 죽지랑은 늠름하고 용감하여 김유신과 함께 삼국을 통일하고 나라를 위해 온 힘을 쏟았답니다. 전쟁이 끝나자, 죽지랑은 나이가 들어 힘이 없어지고 외모도 초라해 졌지요. 급기야 벼슬에서도 내려오니 낮은 벼슬의 사람들까지 그를 얕보기 시작했습니다. 

 

죽지랑의 무리 가운데 '득오' 라고 하는 급간이 있었답니다. 낭도 중의 한 사람이었던 그가 열흘동안 보이지 않자 죽지랑이 그의 어미를 불러 아들이 어디에 갔느냐고 물었지요. 득오의 어머니는 "익선 아간이 내 아들을 부산성의 창고지기로 임명하여 급히 가느라고 낭께 알리지 못하였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죽지랑은 고생하고 있는 득오를 하인과 화랑들과 함께 찾아가 떡과 술을 먹였고 득오는 감동받았습니다. 죽지랑은 지쳐보이는 득오를 위해 익선에게 휴가를 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요. 그때 마침 '간진' 이라는 사람이 조세 30석을 가지고 가다가 이 상황을 보고 익선에게 조세 30석을 준다며 죽지랑을 도우려 했지만 익선은 더한 것을 내놓으라 했고 결국 간진은 말안장까지 주고서야 득오의 휴가를 받을 수 있었지요. 결국 이 일은 임금에게 알려져 화를 불렀습니다. 

 

전쟁영웅이자 훌륭한 화랑인 죽지랑에게 함부로 한 죄로 익선을 잡아들이라 했는데 익선은 도망갔고 익선의 아들이 잡혀 죽게 됐으며 그의 집안은 영원히 벼슬길이 막히게 되었답니다. 도움을 받았던 득오가 죽지랑을 잊지 못하고 화랑을 사모하는 노래인 '모죽지랑가'를 지었다고 합니다.

 

 

 

달님아,

 

가버린 봄을 그리워하니

울음이 나는구나.

아름답게 빛나시던

그 모습 갈수록 스러져 가도다.

 

부디, 죽지랑의 당당하던 모습이

길이길이 남게 해 다오.

 

 

별님아, 

 

이제 그분을 어찌 

만나 뵐 수 있겠느냐.

님 그리는 마음이 

더욱 슬프구나.

 

 

모죽지랑가는 지난날 죽지랑의 용맹하던 화랑으로서의 모습과 인격을 생각하며 간절한 그리움으로 잠 못 이루는 작가의 심정이 서정적으로 묘사된 작품입니다. 향가의 작자는 대부분 이름난 승려나 뛰어난 화랑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점에서 평범한 득오는 예외적인 향기 작자라 할 수 있습니다.

 

신라 무열왕
화랑이 나라에 충성할 것을 맹세한 임신 서기석

 

반응형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제의 마지막을 지킨 계백장군  (0) 2019.04.04
고구려의 장수 연개소문  (0) 2019.04.03
신라장군 김유신 일화  (0) 2019.04.01
신라의 첫 여왕이 된 선덕여왕  (0) 2019.03.31
원효대사와 해골물  (0) 2019.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