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의 탄생과 성장과정
신라의 진평왕 17년, 김서현의 집에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김서현의 아내 만명 부인이 첫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아이의 얼굴에서 밝은 빛이 나고 팔다리가 튼튼한 것이 그야말로 장군감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아이의 등에 일곱개의 별 무늬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던 것입니다. 김서현의 부인은 간밤에 별들이 품으로 쏟아지는 꿈을 꾸었는데 아마 아이가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는가 보다며 기뻐하였습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무예가 뛰어나고 총명하여 온 나라 사람들이 소년의 뛰어남을 칭찬했습니다. 소년은 말타기나 활쏘기 등, 무예라면 못하는 것이 없었으며 글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곧 신라의 모든 청년들이 부러워하는 화랑이 되었습니다. 화랑은 신라때 민간 수양단체로 조직되었던 청소년 집단이며 또 그 중심인물을 가리켜 화랑이라고도 하는데 그 당시 재주가 뛰어난 소년들을 모아 글공부도 하고 무예도 익혔습니다. 소년은 금방 그 화랑들 중에서도 으뜸이 되었지요. 이 소년이 바로 훗날 삼국통일을 이룩한 김유신 장군입니다.
▶화랑 국선이 된 김유신
어느덧 김유신은 열여덟 살의 크고 튼튼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김유신은 벗을 위하는 의리가 뛰어나 화랑들 사이에서도 특별히 존경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그를 따르는 화랑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 중에 '백석'이라는 화랑이 있었습니다. 유신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함부로 말하지 않는 신중한 그의 성격을 좋아해 가까이하며 친하게 지냈습니다.
무예가 뛰어나고 용맹한 유신은 곧 화랑들을 이끄는 '국선' (화랑들을 지휘하던 지도자)이 되었습니다. 국선이 된 유신은 고구려와 백제를 정복하여 삼국을 통일시키고자 밤낮으로 고민했습니다. 그 때, 친구인 백석이 적을 자세히 알면 물리치기도 쉽지 않겠냐며 같이 적국으로 가 은밀히 살펴보자 제안을 했고 유신은 백석의 충고를 받아들여 짐을 꾸리고 아무도 모르게 그날 밤 길을 떠났습니다.
▶김유신을 구한 세 신령과 고구려 첩자 백석
늦은 밤 길찾기가 쉽지 않을까 걱정하는 유신에게 백석은 길을 잘 안다 자신했습니다. 백석도 처음 와보는 길일 텐데 잘 안다고 해 유신이 이상히 여기자 별들이 위치한 모양을 보면 길을 알 수 있다고 백석이 얼버무렸습니다. 백석과 유신은 언덕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지요. 그때 어디선가 두 여인이 나타나 백석과 유신에게 다가왔습니다. 여인들은 숲에 산딸기를 따러 왔다 길을 잃었다며 폐가 안 된다면 날이 밝아 길을 찾을 때까지 두 분을 따라가고 싶다 하였습니다. 유신은 여인들을 산 속에 재울 수는 없다며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보겠다 하였습니다.
백석과 유신, 그리고 두 여인은 산속을 헤매다 어느 냇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였어요. 냇가에 서 있던 웬 여인이 두 여인을 보고 걱정하며 뛰어왔습니다. 그러자 두 여인이 그 여인을 반기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였지요. 백석과 유신은 여인들이 집을 찾아 다행이라 말하고 다시 길을 떠날 차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여인들이 유신과 백석을 잡으며 밤이 늦었으니 하룻밤 머물고 가길 권했습니다.
그들은 마지못해 여인들을 따라 냇가에 있는 오두막집으로 갔습니다. 여인들은 대접할 것이 없다며 낮에 산에서 딴 산딸기를 유신과 백석에게 내놓았습니다. 산딸기를 다 먹고 난 뒤, 백석은 피곤했는지 곧 잠이 들었습니다. 유신도 하품을 하며 백석 옆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막 잠이 들려는 순간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며 유신을 불렀습니다.
방문 앞에는 세 여인이 서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유신에게 숲속에 같이 가자며 보여드릴게 있다 하였지요. 유신이 어리둥절해 하자 세 여인이 말했습니다. 여인들은 유신이 누구인지 다 알고 있다며 숲에 같이 가 준다면 유신을 돕겠다 하였습니다. 유신은 세 여인을 감싸고 있는 신비한 빛에 이끌려 그녀들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여인들은 유신을 이끌고 자꾸만 숲 속 깊이 들어갔고 어느 순간 반짝이는 별들 사이로 별똥별이 떨어졌습니다. 유신이 별똥별을 바라보며 놀라는 사이에 세 여인은 갑자기 신령으로 변했습니다. 세 여인의 변한 모습을 보고 유신은 크게 놀랐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우리는 내림, 혈례, 골화 세 곳을 지키는 수호신이랍니다. 지금 당신과 같이 가는 자를 믿지 마세요. 그는 당신을 해치려 하고 있습니다."
말을 마치자 세 신령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유신은 하늘이 도운 것이 분명하다며 신령들이 사라진 곳에 절을 올리고 숲을 나왔습니다.
그 밤을 뜬눈으로 지샌 유신은 날이 밝자 백석과 함께 마을을 내려왔습니다. 마을의 여관에 짐을 풀다 말고 유신이 말했습니다.
"내 정신을 보게나. 마을들을 그린 지도 몇 장을 놓고 왔군. 집으로 다시 가서 지도를 가져와야겠네."
하지만 백석은 자신이 길을 찾을 수 있다며 지도는 필요 없다 말했습니다.
"아무리 별을 보고 길을 찾는다 해도 자네가 그 곳 사람이 아닌 이상 어떻게 그 마을의 모든 길을 자세히 알 수 있겠나. 자네 혹시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은 이유라도 있나?"
유신의 말에 백석이 당황하며 자네 뜻이 그렇다면 돌아가자 하였지요.
▶고구려의 점쟁이 추남
신라로 돌아온 유신은 곧바로 백석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놀란 백석이 이유를 묻자 유신이 자신을 해치려 한것을 알고 있다 하니 그제야 백석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원래 고구려 사람이네. 우리 고구려에 '추남'이라는 점쟁이가 있었는데 자네가 바로 그 추남이 환생한 사람이라 하여 이렇게 자네를 속일 수밖에 없었네."
유신이 믿지 못하자 백석은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추남은 고구려의 점을 치는 신하였는데 어느날, 고구려 국경의 냇물이 거꾸로 흐르므로 이를 이상히 여긴 왕이 추남에게 점을 치게 했습니다. 추남은 점을 쳐 본 후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왕비님께서 몸가짐이 바르지 못해 이렇게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입니다."
추남의 말에 왕이 크게 노하였지만 한번 기회를 주겠다며 만일 맞히면 살 것이고 틀리면 목숨을 내놔야 한다 했습니다.
왕은 곧 은밀히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신하들이 추남의 앞으로 가지고 온 것은 상자였습니다.
"자, 저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맞혀 보아라!"
추남은 서슴없이 여덝마리의 쥐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상자에는 한마리의 쥐만 있었고 화가 난 왕은 즉시 추남의 목을 베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신하들이 상자 속의 쥐를 풀어 주려다 유난히 배가 부른 쥐를 보고 이상히 여겨 그 배를 갈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쥐의 뱃속에는 일곱 마리의 새끼 쥐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날 밤, 왕은 추남이 신라 김서현의 부인 품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왕이 신하들에게 꿈 얘기를 하자 신하들이 말했습니다.
"추남이 죽으면서 고구려를 멸망시킬 장군으로 태어나리라 맹세하더니 신라의 장군으로 다시 태어날 것 같습니다. 김서현의 아들을 찾아 화를 막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명령을 받은 백석은 유신을 고구려로 데려가려 한 것입니다. 백석이 말을 마치자, 유신은 백석의 목을 베었습니다. 친구를 잃은 슬픔을 삼키며, 유신은 자신의 목숨을 구한 세 신령을 위해서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여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위 내용들은 김유신장군의 한 일화입니다. 김유신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장군이며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후손(12대손)이고 증조부는 금관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해왕이고 조부는 유명한 장군 무력으로, 대대로 유서 깊은 집안의 자식이었습니다. 고구려의 공격을 물리치고 백제를 제압한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김유신은 진덕여왕을 폐하려고 일으킨 귀족 비담과 염종의 반군을 토벌하여 여왕을 보호하였습니다. 진덕여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재상으로 있던 이찬 알천과 의논한 끝에 이찬 김춘추(태종 무열왕)를 왕으로 추대하였고 김유신은 상대등에 올랐습니다.
*김유신이 활약한 황산벌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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