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로' 에 오른 연개소문
연개소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고구려에서 대대로(오늘날의 국무총리)의 벼슬을 지냈습니다. 연개소문은 어려서부터 씩씩하고 의젓해서 전쟁놀이를 하면 늘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때로는 싸움이 격해져 몸에 상처가 나기도 했지만 연개소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자신만만해 했지요. 어른들은 연개소문의 용맹스러움을 칭찬하기도 했지만 그의 겸손하지 못함을 염려하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연개소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맏아들인 연개소문이 대대로가 되어야 했지만, 많은 귀족들은 그의 성격이 포악스러운 점을 들어 반대했습니다. 연개소문은 귀족들의 얘기를 듣고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후 귀족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공손하게 아버지의 대를 잇기를 부탁했습니다. 연개소문의 간절한 부탁에 귀족들의 마음이 움직였고 연개소문은 대를 이어 대대로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연개소문의 역모
연개소문은 대대로에 오르자, 국경 서쪽에 천리장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세력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당나라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귀족들은 성 쌓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농사철에 백성들을 일시키는것도 안되며 평화로운데 괜히 당나라를 화나게 하면 안된다며 반대했지요. 그러나 귀족들이 반대한 진짜 이유는 연개소문의 세력이 커질까 봐 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는 힘센 귀족 집안에서 대대로를 맡았는데, 의견이 맞지 않으면 군사를 동원하여 싸우기도 했습니다.
연개소문이 천리장성을 쌓는 일을 성공리에 마치자,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연개소문의 세력이 커지자 이를 두려워한 귀족들이 영류왕(고구려 제27대 왕)에게 달려가 연개소문이 역모를 꾀하고 있고 비밀리에 군사들을 훈련시킨다 모함을 했지요. 그러나 연개소문은 미리 이 사실을 알게 되어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습니다.
어느 날, 연개소문은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수많은 진귀한 음식들이 차려졌고 많은 귀족들이 초대되었지요. 귀족들은 연개소문이 이제야 윗사람들을 대접한다며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답니다. 둥둥둥! 그때 갑자기 북소리가 들리면서 군사들의 열병이 시작되었습니다. 술에 취한 귀족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고 술을 마시지 않은 귀족들은 군사들의 무서운 모습이 왠지 불안했습니다. 북소리는 점점 빨라졌고 군사들은 귀족들이 모인 곳에 이르렀습니다. 다음 순간 귀족들에게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고 백명이 넘은 귀족들이 무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어서 연개소문은 궁궐로 들어가 왕을 죽였습니다.
▶대막리지가 된 연개소문
연개소문은 보장왕을 새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대막리지(고구려의 행정과 군사권을 장악한 최고 관직)가 되어 큰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연개소문은 항상 두꺼운 갑옷을 입고, 다섯 개의 날카로운 칼을 차고 다녔는데 감히 누구도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지요. 그는 반드시 부하 장수의 등을 밟고서야만 말을 타거나 내렸고, 밖으로 나갈 때는 군대를 풀어 앞서도록 했습니다.
연개소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난폭하게 변해 갔고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고통을 당했습니다.
고구려왕과 신하들을 죽이고 멋대로 왕을 세웠다는 소식을 들은 당나라 태종은 매우 화가 났습니다. 당 태종은 당장 고구려를 치자고 했지만 신하들이 반대를 했습니다. 이미 황제께서 치실 것을 알고 단단히 대비를 했을 거란 이유였지요. 그러니 나중에 허술한 틈을 노려 공격하자 했고 당 태종은 연개소문이 미웠지만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때 고구려, 백제, 신라는 영토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신라의 사신이 당 태종에게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를 공격하고 있어 당에 조공을 보내려고 하여도 고구려가 길을 막으니 고구려를 물리쳐 달라 아뢰었습니다. 당 태종은 고구려를 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써서 고구려에 보냈지요.
"신라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조공을 바치고 있다. 백제와 고구려를 군대를 거둬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치겠다!"
당의 사신이 고구려에 도착했을 때, 연개소문은 이미 신라를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사신이 당 태종의 뜻을 전했지만, 연개소문은 신라에 빼앗긴 500리의 땅을 돌려받기 전에는 전쟁을 그만둘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당의 사신은 당나라로 돌아가 태종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더니 태종의 아버지인 고조께서 세운 왕을 죽인 것도 큰 죄인데 내 명령까지 어기겠다니 용서할 수 없다며 고구려 공격을 준비시켰습니다.
하지만 태종은 연개소문과 고구려군의 용맹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공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한 번 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연개소문을 타일렀지요. 그러나 이번에도 연개소문은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았고 오히려 계속 설득하려 한 사신을 굴 안에 가두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당 태종은 17만 대군을 직접 지휘하여 고구려로 쳐들어왔습니다.
▶당나라와 고구려의 전쟁
연개소문은 당나라와의 전쟁 준비를 하였습니다. 성벽을 튼튼히 쌓고 성안에 곡식과 물을 아기며 당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은 몽고의 부족들에게 사신을 보내여 당의 뒤쪽을 공격하도록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잘 훈련된 당의 군사들이 몰려오자 고구려의 성들은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겁을 먹은 병사들이 도망가기 시작하자 장수들은 적의 사기가 높으니 성을 지키며 적이 지치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설득했지만 연개소문은 겁쟁이들이라며 장수들을 비웃었습니다.
연개소문은 빨리 적을 무찔러 사람들에게 자신의 용맹을 보여주고 싶어 젊은 장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지만 무리한 공격으로 쉽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연개소문은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지요. 많은 고구려 군사들이 당에 항복한 뒤여서 결국 고구려는 많은 군사들을 잃고 안시성까지 후퇴했습니다.
▶안시성 성주 양만춘 장군
수많은 당나라 군사들이 안시성을 에워쌌습니다. 안시성은 고구려의 길목에 있는 중요한 성이었는데 양만춘 장군이 성주로 있었지요. 양만춘 장군은 고구려군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적군을 공격했습니다. 장군의 명령에 따라 고구려 군사들은 뜨거운 물을 붓고, 성벽 아래로 바위를 굴려 당나라 군사들을 사다리에서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당나라군은 안시성보다 높게 성을 쌓는다며 돌과 흙을 날라와 쌓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안시성의 고구려군이 더 높게 성을 쌓았지요. 당나라 군사들은 호시탐탐 안시성을 공격했지만 굳게 닫힌 성문은 열리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자 당나라 군사들은 지쳐갔습니다. 양만춘 장군은 싸움이 길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군사들에게 교대로 쉬며 농사일을 돕도록 하라 명하였습니다.
어느덧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고 당나라 군사들은 점점 더 배고픔과 추위에 지쳐 갔지요. 더 추워지면 먹을 물조차 얼어 버릴 게 뻔했습니다. 당 태종은 어쩔 수 없이 후퇴 명령을 내렸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승리를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렀답니다.
▶연개소문의 죽음과 고구려의 멸망
이후에도 당나라는 네 번이나 더 침입했지만 그때마다 고구려는 당나라군을 무찔렀습니다. 연개소문은 당의 공격을 이겨 내고 고구려를 지켰지만 점점 성격이 포악해지고 쉽게 사람을 해쳤습니다. 연개소문은 사람들을 의심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밤을 낮처럼 밝히고 무장한 군사를 동원해 자신의 침실을 지키게 했지만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연개소문이 눈을 감았을 때 그의 가족들만이 죽음을 슬퍼하는 눈물을 흘렸지요. 연개소문의 죽음 후 그의 맏아들 남생이 왕위를 계승하였고 남건, 남산 등이 권력을 나누어 맡았는데 곧이어 형제간의 분쟁으로 남생이 당에 항복하고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는 신라에 항복하였습니다. 이러한 혼란 끝에 고구려는 결국 그가 죽은 지 두 해 만에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안시성 전투는 '안시성' 이라는 영화로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배우 조인성이 열일을 했네요^^
고구려 시대만 해도 북한과 맞닿은 중국쪽 영토가 고구려 땅이었는데 고구려가 멸망하고 많이 빼앗긴 게 아쉽습니다. 중국인들은 연개소문을 '캐쉰'이라 부르는데 이는 '갓쉰동' 이란 발음과 매우 비슷합니다. 중국 민담 소설에 '갓쉰동전' 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이 쉰 살에 이르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는 사람이 하늘에 제사를 바쳐 아들을 얻었는데, 이름을 '갓쉰동' 이라 하니 '갓 쉰 살에 이르러 얻은 아이' 란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불길한 예언을 피해 15년간 부모와 떨어져 있어야 했고 그곳에서 온갖 고난을 겪으며 열심히 공부하고 무예를 닦아서 원래의 집으로 돌아간 후, 15년간 있었던 나라를 정벌해서 이름을 떨쳤다는 내용인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연개소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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