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시절의 장보고와 정년
바닷가 작은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바다에 들어간 젊은이들이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었을지도 모른다며 돌아서는데 바다에서 무언가 솟아오르자 사람들은 깜짝 놀랬습니다. 한 젊은이가 헤엄쳐 나왔고 뒤따라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도 바다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장보고와 정년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감탄해서 소리를 질렀지요. 장보고와 정년은 신라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자랐습니다. 장보고와 정년은 헤엄실력 뿐 아니라 싸움 실력도 좋았어요. 특히 정년은 바다 속에서 50리를 숨쉬지 않고 헤엄칠 수 있었지요. 지는 것을 싫어하는 정년은 언제나 장보고에게 지지 않으려고 덤벼들었습니다. 그러나 지혜롭고 믿음직한 장보고는 언제나 정년을 잘 보살펴 주었어요. 그래서 정년도 장보고를 형이라고 부르며 잘 따랐습니다. 어느 날, 장보고와 정년은 넓은 세상으로 나가자며 당나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들은 당나라에서 군인이 되었습니다.
▶당나라의 장군이 된 장보고와 정년
두 사람이 말을 타고 창을 잡으면 아무도 그들을 당해 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곧 당나라 장수의 눈에 띄어 무령군 소장이 되었습니다. 당나라 군사들은 똑같이 장보고와 정년을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지기 싫어하는 정년은 불만스러웠지요. 심술이 난 정년은 다른 군사들 앞에서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뽐내며 장보고를 흉보고 다녔습니다. 장보고는 정년이 자기를 나쁘게 얘기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았지만, 시치미를 떼고 모른 체했습니다. 사실 장보고는 다른 일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장보고는 훈련이 없는 날이면 바깥에 나가기를 좋아했습니다. 당나라는 세계 여러 나라의 상인들로 붐볐고 향료와 도자기, 생전 처음 보는 에메랄드와 아라비아의 카펫에 장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신라의 특산물인 인삼과 우황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밧줄에 묶여 끌려가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신라인들이 노비로 팔려가는 모습을 보고 순간 장보고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습니다.
장보고는 막사로 돌아왔지만 낮에 밖에서 보았던 신라인들의 비참한 모습이 떠올라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 생각에 잠겼던 장보고가 어느 날 정년에게 신라로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신라 백성들이 해적들에게 잡혀와 당나라의 노비가 되어 살고 있는데 당나라의 장수로 있는게 화가났던 것입니다. 정년에게 함께 가자 권했지만 정년은 여기서 대접받는게 좋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장보고가 떠난다는 말에 섭섭함과 함께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더이상 장보고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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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을 설치한 장보고
신라에 돌아온 장보고는 흥덕왕(신라 제42대왕)을 찾아갔습니다.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해적들에게 잡혀 온 신라인들이 노비로 팔리고 있다며 군사들을 이끌고 나가 청해(지금의 완도)에 진을 치고 해적들로부터 신라 백성들을 지키겠다 아뢰었습니다. 크게 기뻐한 흥덕왕은 같은 생각을 했다며 장보고에게 1만의 군사를 내주었습니다.
군사들을 이끌고 청해에 도착한 장보고는 성벽을 쌓고, 튼튼한 배를 만들어 군사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조용하던 청해진은 신라 군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지요. 장보고가 청해에 진을 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어요. 컴컴한 어둠을 틈타 여러 척의 해적선이 청해 앞 바다로 접근해 왔습니다. 그들은 모든 불을 끈 채 조심스럽게 미끄러져 들어왔습니다. 달빛도 보이지 않는 칠흙 같은 밤이었지요.
그 때 갑자기 신라 군사들의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신라군이 쏜 불화살에 바다는 대낮처럼 환해졌습니다. 해적선에 접근한 신라 군사들이 창과 칼을 들고 적을 무찔렀습니다. 도망가려던 해적선도 불화살에 맞아 불타고 말았지요. 신라의 바닷가에 몰래 접근하여 백성들을 잡아가려던 해적들은 신라 군사들의 공격에 모두 죽고 말았답니다. 청해진의 장보고가 신라의 바다를 지키고 있다는 소문에 해적들은 감히 신라를 넘보지 못했습니다.
▶무역을 시작한 장보고와 신라로 돌아온 정년
장보고는 늘 백성들의 생활을 살피고 걱정했습니다. 장보고는 백성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하다 다른 나라를 상대로 장사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나라에서 보았던 여러 나라의 상인들을 생각해 냈지요. 장보고는 청해진을 더욱 튼튼히 지키는 한편 상인들을 시켜 장사를 하게 했습니다. 바닷길을 통해 당나라와 일본에 사람을 보내어 신라의 물건을 내다 팔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 오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본과 당나라 상인들을 연결해 주는 역할도 했지요.
한편 당나라에 있던 정년은 관직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지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 탓에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지요. 정년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장수를 찾아갔습니다. 장보고를 찾아간다는 정년의 말에 그 장수는 옛날에 장보고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고 다닌걸 얘기하며 말렸지만 당나라에서 굶어 죽느니 혼이 나더라도 장보고에게 가겠다며 신라를 향해 떠났습니다.
신라에 도착한 정년은 당당하게 신라의 장군이 된 장보고의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년은 예전에 그와 같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요.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얼른 장보고를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년은 용기를 내어 장보고를 찾아갔습니다. 정년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고 장보고는 정년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지요.
▶반란을 제압한 장보고와 정년
정년에게 음식과 술상을 대접하고 있던 중에 육지에서 급한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반란이 일어나 대왕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랐으나 곧 정신을 가다듬고 정년에게 군사들을 이끌고 서라벌(지금의 경주)로 떠나라 했습니다. 장보고는 자신에게 큰 일을 맡기어 놀란 정년에게, 둘 사이에 믿음이 있으니 무엇이 두렵겠냐며 과거의 일은 모두 잊으라 했습니다. 이에 정년은 기필코 반란자들을 없애 형님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며 오천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서라벌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궁궐로 쳐들어갔지요. 정년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방심하고 있던 반란자들은 싸워 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거나 항복했습니다. 반란군이 사라지자 서라벌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정년은 장보고에게 이 소식을 전했고 장보고는 자신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며 정년을 칭찬했습니다.
신무왕(신라 제45대 왕)이 신라의 새로운 왕이 되었습니다. 신무왕은 장보고가 군사를 보내 주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며 장보고를 재상으로 임명했고 청해진은 정년에게 맡겼습니다. 정년은 장보고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청해진을 지켰고, 신라의 백성들과 상인들을 잘 보호했습니다. 이로써 안전한 바닷길을 통한 당나라와 신라, 일본을 잇는 무역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삼국사기는 보통 한 사람씩 따로 기록되어 있는데 장보고와 정년은 두 사람을 함께 적어놓았습니다. 이는 장보고와 정년의 우정이 깊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지키고 바다의 왕이라 불린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년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장보고의 죽음
반란 후 왕이된 신무왕은 왕이 되기 전에 장보고에게, 자신이 왕위에 오르면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삼겠다 약속했고 장보고는 왕위에 오르는 것을 도와 줍니다. 신무왕은 약속을 지키려 했으나 신하들은 장보고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염려하여,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이는 것을 반대했지요.
신무왕은 약속을 자기가 지키지 않아 장보고가 공격해 올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염장을 보내 장보고를 죽이도록 지시합니다. 왕에게서 도망쳐 온 것으로 꾸며 장보고에게 접근한 염장은 장보고가 술에 취했을 때 그를 죽이고 맙니다. 장보고는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권력 다툼에 휘말려 목숨을 잃고 만 것입니다.
▶삼국 시대의 출입국 관리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로 많은 상인들이 신라, 일본과 당나라를 왕래했는데 그들이 자유롭게 다른 나라를 드나들 순 없었습니다. 실제로 신라와 당나라 양국에서의 출입국관리는 엄격하고 철저하였습니다. 신라사람이 당나라에 도착한 후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가까운 곳에 있는 관청을 찾아가 자신이 온 목적과 일정 및 자기 진술서를 서면으로 작성하고 입국 허락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상급 관청에서 입국 허락 공문이 내려오기 전까지 신라인의 행동은 극히 제한되었습니다. 그리고 불법으로 입국한 사람들은 옥에 갇히거나 처벌받았습니다. 현 시대와 비슷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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