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를 세운 주몽
주몽의 탄생
동부여의 왕 금와가 태백산 남쪽에 있는 우발수 라는 곳에 갔다가 거기서 우연히 유화라는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유화는 물의 신 딸인데 나들이를 왔다가 하늘 신의 아들 해모수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부모의 허락없이 혼인하였다 하여 우발수에 귀양을 오게 되었다 합니다. 유화의 이야기를 듣고 난 금와왕은 이상히 여겨 유화를 궁궐로 데리고 왔습니다. 헌데 유화의 방으로 강한 한 줄기 햇빛이 들어오더니 방 안에 있는 유화를 환하게 비추고 그녀가 움직이는 대로 계속 쫓아와 그녀를 비추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 유화는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임신하여 배가 점점 불러 오던 유화가 알 한 개를 낳았습니다. 사람이 알을 낳은 것은 분명 나쁜 징조라고 여겼기 때문에 금와왕은 유화가 낳은 알을 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금와왕은 짐승들에게 알을 던져주라고 하였으나 개와 돼지 모두 알을 먹지 않았고 피하자 알을 길에 버리도록 명령하였습니다. 허나 소와 말들이 알을 슬슬 피해가자 들판에 버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곳에서도 동물들은 알을 품어주며 지켜주었기에 금와왕은 도로 알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일들로 인해 유화부인의 품에 돌아오게 된 알은 깨려고 해도 깨지지 않더니 스스로 쪼개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림 - 한국헤밍웨이 고구려를 세운 주몽
주몽의 성장과 대소왕자의 위협
주몽은 뼈대가 바르고 튼튼하며 성장마저 남다르게 빨랐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뛰어난 재주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제 손으로 활과 살을 만들어 쏘면서 백발백중 하는 솜씨를 보며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의 '주몽'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주몽은 금와왕의 일곱 아들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으나 뛰어난 활솜씨로 인해 특출남을 보여 그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아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주몽을 볼 때마다 칭찬하였고 그 이야기를 들은 대소 왕자는 기분이 언짢아 다음 왕위를 이을 자신보다 더 대단하다 여겨지는 주몽을 가만둘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대소왕자는 금와왕에게 주몽은 사람의 자식이 아니라며 불길한 징조라 하였으나 금와왕은 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몽을 못마땅해 하던 금와왕의 아들과 신하들은 주몽을 해치려 하였고 이를 알아챈 유화부인은 주몽을 피하게 했습니다. 오이, 마리, 협보 세 사람과 함께 떠난 주몽은 군사들에 쫓기다 큰 강 앞에서 더 나아 갈 수가 없게되자 주몽은 우렁찬 목소리를 외쳤습니다.
"나는 물의 신 하백의 외손자 이며 하늘 신의 아들 해모수의 아들입니다. 위험에 처하였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때 물고기와 자라가 물 위로 모여 다리를 만들어 주몽 일행을 건너게 하고 이내 흩어졌습니다. 주몽을 쫓아오던 말 탄 군사들은 강을 건널 수가 없었지요. 위험에서 빠져나온 주몽 일행은 졸본주에 도착해 그 곳에 도읍을 정하였습니다.
그림 - 한국헤밍웨이 고구려를 세운 주몽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
미처 궁궐을 짓지 못해 풀과 짚으로 지붕을 만든 집에 살면서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였습니다. 주몽은 고구려의 왕이 되었고 고씨를 자신의 성으로 삼았습니다. 주몽의 성은 본래 해모수의 아들로 해씨였지만 하늘신의 아들로서 햇빛을 받고 태어났다 하여 스스로 높다는 뜻의 '고' 라는 글자를 성으로 삼았습니다. 고주몽에 의해 세워진 고구려는 이후 705년 동안 이어졌고 한때는 중국의 힘센 나라들의 쩔쩔매기도 한 강한 나라였습니다.
활쏘기
주몽은 활쏘기를 매우 잘 했던 것으로 기록에 쓰여 있습니다. [동국이상국집]에도 주몽의 활 솜씨에 대해 쓴 글이 있습니다. 주몽이 태어나서 한 달이 넘어 말을 하는데 어머니에게 말학를, 파리들이 눈에 덤벼들어 잘 수가 없으니 활과 살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 주었더니 물레 위의 파리를 쏘아 맞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고 동명성왕이 된 후에 이웃해 있는 비류국의 송양과 활 솜씨를 결루게 되었습니다. 송양이 활을 쏘았는데 백 보 거리에 있는 사슴의 배꼽을 맞히지 못했습니다. 주몽은 백 보 밖에 옥가락지를 걸어 놓고 쏘았는데, 깨지는 모양이 마치 기와가 부서지는 듯하여 송양이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 민족은 활쏘기를 언제부터 했을까요? 우리나라 조상들은 일찍부터 활쏘기를 하여 서양보다 적어도 2천 년은 앞섰고, 중국보다도 먼저 발달했습니다.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유적들에서는 활촉이 많이 나옵니다. 이 때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짐승들을 사냥하거나, 적이 침입하여 싸울 때 썼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후에 활쏘기는 놀이의 성격을 띤 운동 경기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활을 가장 중요한 무기로 여겼으며, 활쏘기는 민중에게까지 가장 널리 보급되었던 무예였습니다. 고구려 무덤 벽화를 보면, 말을 타고 활쏘기 경기를 하는 모습이 여러 장면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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