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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을 빛낸 위인 가야국의 첫 임금 수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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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국의 첫 임금 수로왕


알에서 태어난 수로왕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린 후로 아직 나라 이름이 없는 곳이 있었습니다. 또 임금이나 신하를 부르는 이름도 없었습니다. 아홉 부족장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이라 부리었고 이 아홉 부족장들이 백성들을 이끌었답니다. 


액막이 제사(앞으로 닥칠 재난을 다할 운수인 액을 미리 막으려 액을 떠내는 의미)가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풍습에 따라 사람들은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나서 물가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는 곳의 북쪽에 있는 거북 모양의 산봉우리인 구지에서 마치 무엇이 부르는 듯한 수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아홉 부족장과 이삼백 명의 무리가 구지로 몰려갔습니다. 사람 목소리 같기는 한데 모습은 안 보이고 소리만 났습니다. 


"하늘이 나에게 이 곳에 와서 나라를 새로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명령하셨다. 그래서 여기에 내려왔다. 너희들은 이 산봉우리 꼭대기의 흙을 파서 한 줌씩 쥐고 이렇게 노래를 불러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약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  

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어라. 그러면 하늘로부터 대왕을 맞이 하게 되리라. 그리하여 너희들은 기뻐 춤추며 뛰놀게 될 것이다."


아홉 부족장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소리가 시키는 대로 모두 즐겁게 노래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얼마 후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니 자줏빛 줄이 하늘로부터 드리워져 땅에 닿아 있었습니다. 줄 끝에는 붉은 보자기로 싼, 금으로 된 상자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것을 열어 보니 해처럼 둥근 황금색 알 여섯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 놀랍고도 기쁜 마음에 함께 수없이 절을 하였습니다. 그 후 12일이 지난 다음 날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다시 함께 모여 금 상자를 열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상자 안에 알 여섯 개가 놀랍게도 사내아이로 변해 있었습니다.  


"좀 보세요.  모두 크고 튼튼한데다 얼굴에 위엄이 서려 있어요."

"분명히 하늘이 내리신 분들이니 다 같이 절을 올립시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정성을 다해 대했습니다. 여섯 아이들은 나날이 자랐고 어느 새 10여 일이 지났습니다. 이 때 아이들의 키는 9자나 되었고 얼굴은 용 같았으며, 눈썹은 여덟 가지 빛깔을 띠었고, 눈동자는 두 개씩 겹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가야의 건국

그 중 한 아이가 그달 보름날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처음으로 나타난 왕이라 하여 이름을 '수로'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라 이름을 대가락이라 하였고, 가락국 또는 가야국(훗날 금관가야)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우두머리가 되어 여섯개의 가야를 만들었습니다. 수로왕은 임시로 지낼 대궐을 꾸밈없이 검소하게 짓도록 하였고 임시 대궐은 짚으로 이은 지붕에 흙 계단은 높이가 겨우 석 자밖에 안 되었습니다. 왕위에 오른 지 2년이 되는 어느 날, 수로왕이 말했습니다.

"나라의 도읍을 정하겠노라."

수로왕은 임시 대궐의 남쪽 신답평에 도읍을 정한 후 , 새 대궐을 지어 들어가 살았습니다.  



탈해의 등장

이 무렵에 완하국 함달왕의 왕비가 신기하게도 알을 낳았습니다. 그 알에서 사람이 나왔는데 그의 이름을 '탈해'라 불렀습니다. 탈해는 키가 석 자요, 머리 둘레가 한 자나 되었습니다. 어느 날, 탈해가 바다를 따라 가야국 수로왕을 찾아와 왕의 자리를 빼앗겠다 말하자 수로왕이 대답하였습니다.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나는 앞으로 나라 안을 평화롭게 만들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 주려 한다. 그런지라 감히 하늘의 명령을 어기고 왕위를 남에게 내놓을 수가 없다. 또 우리나라 백성들을 너에게 함부로 맡길 수가 없다."

그러자 탈해는 술법으로 겨루어 이긴 자가 왕이 되자고 했고 수로왕은 승낙했습니다.  


수로왕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잠깐 사이에 탈해가 사나운 매로 변하였지만 수로왕은 매보다 더 커다란 독수리로 변하여 날개를 퍼덕였습니다. 다시 탈해는 재빨리 참새가 되어 독수리의 뒤로 날아갔습니다. 수로왕은 날쌘 새매로 변하여 참새의 머리 위로 날았습니다.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탈해와 수로왕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탈해는 그제야 엎드려 수로왕에게 항복하였고 선뜻 작별 인사를 건네며 중국 배가 오가는 물길을 따라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수로왕은 탈해가 머물러 있으면서 슬그머니 반란을 일으킬까 염려되어 병사를 보내 탈해를 쫓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탈해가 계림 땅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군사들은 모두 가야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로 변하는 술법의 연유

그 당시 새는 하늘에 보다 가까이 가는 동물로서 인간과 하늘신의 사이를 오가며 둘을 연결해 주는 신성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연유로 새와 같이 알에서 태어난 것은 신성한 존재임을 뜻합니다.



수로왕의 혼인

어느 날, 아홉 부족장들이 모여 수로왕께 아뢰길 대왕께서 배필을 얻지 못하였으니 부족장들의 딸들 중 가장 좋은 사람을 뽑아 배필로 삼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수로왕은 왕후가 될 이 또한 하늘에서 마련하여 줄 것이니 걱정말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로왕은 유천간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가볍고 빠른 배와 날랜 말을 가지고 서울 남쪽에 있는 섬 망산도에 가서 기다리도록 하라."

또 신귀간에게는 서울 아래 있는 승점으로 가 있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왕이 명령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붉은 비단 돛을 달고 붉은 깃발을 휘날리면서 한 척의 배가 북쪽을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 유천간이 그들을 맞이하였고 신귀간이 대궐로 달려와 수로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수로왕이 기뻐하며 명령하시길,  "곧 아홉 부족장들은 찬란하게 꾸민 배로 그들을 맞이하시오."


마중 나간 이들이 배에 있던 사람들을 즉시 대궐로 데려가려 했지만 배 안에 타고 있던 아리따운 여인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평생에 처음 보았는데 어찌 함부로 따라가겠느냐!"

유천간이 돌아가 수로왕에게 아뢰었더니 직접 관리들을 거느리고 대궐 아래 서남쪽으로 60걸음쯤 되는 산기슭에 가서 장막으로 궁전을 만들어 놓고 기다렸습니다. 여인은 산 바깥쪽 나루터에 배를 매어 두고 뭍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는 높은 산언덕에 올라 잠시 쉰 후, 입었던 비단 바지를 벗어 예물로 그 곳의 산신령에게 바치고 신보와 조광 두 신하를 비롯해 노비들까지 20여 명이 여인을 따라왔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온 각종 비단옷과 금은 보화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수로왕은 직접 나가 그녀를 맞았고 장막 궁전으로 들어왔습니다. 수로왕이 신하들에게 귀한 음식과 고운색의 이부자리에서 쉬게 해 주라 명하였습니다.  


공주는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열여섯 살이고 아유타국의 공주입니다. 몇달전 왕과 왕후께서 말하길, '꿈에 하느님께서, 가야국의 첫 임금 수로는 하늘이 내려보내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공주를 보내 배필로 삼게 하라고 하셨다. 그 말을 마치자 하느님이 하늘로 올라가셨는데 꿈에서 깬 후에도 하느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그러니 너는 이 자리에서 빨리 부모와 작별하고 그 곳으로 떠나라.' 라고 하시어 항해끝에 이제야 귀한 분을 뵙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수로왕은 태어날때부터 공주가 멀리서 올 것을 미리 짐작하여 왕후를 들이라는 청을 듣지 않았고 지혜롭고 고운 그대가 왔으니 나에겐 커다란 행복이라 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수로왕과 아유타국 공주는 혼인을 하게 되었고 공주는 가야국의 왕후가 되었습니다.



가야국의 멸망

수로왕은 나라의 낡은 제도를 새롭게 바꾸고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하며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수로왕은 무섭게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위엄이 있어 보였고, 엄하게 하지 않아도 나라가 잘 다스려졌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189년에 왕후가 죽었습니다. 온 나라 사람들이 슬퍼하였고 왕후를 잃은 수로왕은 밤마다 베개에 머리를 묻고 슬퍼했습니다. 왕후가 죽은 지 10년이 된 199년, 수로왕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백성들은 하늘이 무너진 듯, 부모를 잃은 듯 슬퍼하며 수로왕을 대궐 동북쪽 평지에 장사지냈습니다. 그리고 이 무덤을 '수릉왕묘'라 부르고 매년 성대히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낙동강 하구 김해 지방에 자리잡은 금관 가야는 우수한 철이 많이 생산되는 곳으로, 기원후 1세기 무렵부터 바다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철은 무기나 농기구를 만드는 재료로 사회 발전에 매우 중요한 자원입니다. 금관 가야는 중국과 일본에 철을 팔며 무역이 발달하여 막강한 해상 강국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500년 가까이 이어졌던 가야는, 성장하여 강해진 신라의 공격을 받고 562년에 멸망했는데, 가야의 문화는 고스란히 신라로 흡수됩니다.  


또 가야의 왕족들은 신라의 귀족으로 들어가 신라를 위해 일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김유신입니다. 신라 문무왕은 어머니가 가야 왕족의 후예인 김유신의 누이였으므로 가야 왕족과 인척 관계가 있게 되어 수로왕의 제사를 계속 지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유타국의 허왕후

기원전 3세기경 인도의 갠지스강 중류에 크게 번성하였던 아요디아 왕조로 추정.  인도의 아요디아 문화와 불교 문화가 들어와 수로왕 신화에 영향을 끼친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야의 철기 문화를 짐작케 하는 갑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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