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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을 빛낸 위인 백제 온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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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첫 임금 온조왕


고구려를 세운 주몽

졸본 부여의 왕은 주몽이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을 피해 북부여에서 이 곳 졸본부여로 왔을때 당당하고 의젓한 모습에 반해 자신의 세 딸중 한 명과 주몽을 혼인 시키고 싶다 하였습니다.  아들이 없었던 졸본부여의 왕은 주몽을 자신의 곁에 가까이 두고 싶어했고 주몽도 흔쾌히 허락하여 왕의 둘째 딸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여 왕이 죽자, 주몽이 왕이 되어 '고구려'를 세웠습니다.


왕위에 오른 주몽은 뛰어난 판단력과 지혜로움으로 나라를 잘 다스렸고 아들도 둘이나 태어나 잘 자랐습니다. 맏이는 '비류' 이고 둘째는 '온조' 였는데 두 아들은 우애가 깊어서 함께 말을 타기도 하고 사냥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또한 학문도 게을리하지 않아 주몽왕을 흐뭇하게 했습니다.




유리의 등장

온조는 맏이인 비류가 당연히 주몽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것이라 생각했고 비류 또한 자신이 다음 왕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주몽왕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주몽이 전에 살던 나라에서 낳은 아들 '유리' 였습니다. 주몽왕은 너무나 반갑게 유리를 맞이하였지요. 하지만 비류와 온조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습니다. 더군다나 갑자기 나타난 유리가 하루아침에 다음 왕이 될 태자가 되자 형제는 점점 불안해졌답니다.


"유리가 왕이 되면 우리 형제를 가만히 둘까?"

나라의 앞날을 함께 의논하던 비류와 온조는 이제 자신들의 생명이 걱정스러워졌습니다. 그리하여 그 둘은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서기로 하고 주몽왕에게 가서 떠나겠다 말씀드렸습니다. 주몽왕은 두 아들을 보내는 것이 가슴 아팠지만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오간, 마려 등 열 명의 신하를 데리고 가거라."

비류와 온조가 길을 나서자, 신하뿐 아니라 많은 백성들까지 뒤따랐습니다.




비류와 온조

비류와 온조의 지휘 아래 긴 행렬이 뒤를 따르다 한산에 있는 '부아악' 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이 때, 지혜로운 신하가 앞으로 나서며 말하길, "이 하남의 땅은 북쪽으로 한강을 끼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을 의지하며 남으로는 기름진 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게다가 서쪽으로는 큰 바다가 있으니 이는 신이 내려 준 땅이라 할 수 있사옵니다. 이 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온조는 산과 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바닷가 쪽으로 가고 싶었던 비류는 못마땅한 기색이었지요.  


결국 비류는 탁트인 바닷가에서 살고 싶다며 자신을 따를 사람은 따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온조와 열 명의 신하들은 모두 이 곳에 있고 싶어해서 온조에게 함께 살자 했지만 온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백성의 반과 함께 미추홀(지금의 인천 부근)로 떠났습니다. 온조는 하남 위례성(온조왕이 처음 나라를 세운곳으로 전라도 광주가 가장 유력)에 도읍을 정한 뒤 백성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열 명의 신하가 함께 하니, 나라 이름을 '십제'라 짓겠노라.  땅이 비옥하고 경치가 아름다우니 분명 이 나라는 살기 좋고 풍요로울 것이다." 

남아있던 백성들은 늠름한 온조의 모습에 함성을 지르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백성들은 집을 짓고 밭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짐승도 길렀습니다. 바로 기원전 18년의 일입니다.




비류의 죽음

한편, 바다를 찾아 나선 비류 일행은 미추홀로 가는 길이 너무 멀고 힘들었습니다. 거의 기진맥진할 때쯤 바다를 발견하곤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떼를 지어 달려갔습니다. 좋아서 날뛰는 백성들을 바라보며 비류는 가슴이 벅차 눈물이 핑 돌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세우리라 다짐했습니다. 


백성들은 비류의 지휘 아래 자리를 잡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며 배를 만들어 고기를 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물은 짰으며 땅은 습하여 농사짓기 힘들고 거센 풍랑에 바다에서 목숨을 잃는 이도 생겼습니다. 백성들의 원망하는 소리가 점차 높아지자 비류는 마음이 아프고 후회스러웠습니다. 혼자 고민하던 비류는 문득 온조가 보고 싶었고 백성들의 생활도 궁금해서 온조가 있는 하남 땅으로 향했습니다. 속으론 그곳의 백성들도 불만투성일거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위례성에 닿았을때 비릿한 바다 공기와 다른 맑은 기운이 느껴졌고 눈부신 햇살 아래 짙푸른 나뭇잎들이 반짝거리는 모습이 좋아 보였습니다. 짐승들과 어울려 들판을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비류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듯 했습니다. 비류는 온조도 만나지 않고 미추홀로 돌아왔고 시름시름 앓듯 몸이 약해졌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죄 없는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다며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에 병을 얻은 것입니다. 몇 날 며칠을 괴로워하던 비류는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고 백성들은 온조왕이 다스리고 있는 위례성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백제의 탄생

온조왕은 미추홀의 백성들을 맞아들이고 살 곳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라 이름도 '백제'라 고쳐 불렀습니다. 백성들이 기꺼이 따랐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렇게 해서 백제가 탄생하였고 온조왕은 조상의 뿌리가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나왔으니 성을 '해' 라고 하겠다 명했습니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은 몸집이 크고 성품이 온화하며 효성이 지극했다고 합니다. 또한 말타기와 활쏘기에 뛰어나 주위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46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많은 영토를 넓혔던 온조왕은 백제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주인공입니다. 그 뒤 백제는 온조왕이 나라를 세운 지 678년 만인 제31대 의자왕에 이르러 신라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설화

비류 중심의 설화로 비류와 온조왕은 해부루의 서손 우태와 소서노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 후 우태가 죽은 뒤 동명성왕이 졸본으로 망명해 오자, 소서노는 동명성왕에게 개가하여 고구려 건국을 도왔고 그 뒤 동명성왕의 원자가 태자가 되자, 비류는 온조왕과 그 무리를 이끌고 미추홀에 정착했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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