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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애꾸눈 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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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꾸눈 궁예


궁예의 어린시절


아이는 오늘도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놀았습니다. 깊은 산골이라 같이 놀아 줄 친구 한 명 없었지만, 산토끼나 다람쥐를 쫓아 골짜기를 달리고 신기한 풀과 꽃을 가지고 놀면 마냥 신나기만 했습니다. 예쁘게 차려입은 새들의 노래도 좋았습니다. 아이는 산에서 딴 머루와 다래를 터지지 않게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담아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아이의 한쪽 눈은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지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한없이 가볍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주머니에 담긴 것을 꺼내드렸지만 어머니는 아이가 내놓은 머루와 다래를 집어 던졌습니다. 마당에 머루와 다래가 어지럽게 흩어져 버리고 아이는 금세 구슬 같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회초리로 아이의 종아리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고 매를 들었고 때리는 어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날 밤, 아이는 종아리가 아파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벌써 자느냐는 어머니의 말에 서운하여 대답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물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어머니의 손에는 조그마한 보자기가 들려 있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왕자님! 저를 용서하십시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행동에 아이는 깜짝 놀라 일어났습니다.

"어머니, 왜 이러십니까?" 궁예의 어머니는 방바닥에 엎드려 흐느끼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신라의 왕자님 이십니다!" 그리고 보자기를 풀어 피 묻은 아기 옷을 보였습니다.






궁예를 죽이려던 왕


아이는 신라 경문왕의 아들 궁예였습니다. 궁예의 어머니는 경문왕이 총애하는 궁녀였습니다. 궁예가 태어나는 날, 흰 빛이 무지개처럼 하늘로 뻗쳤고, 궁예는 태어나면서부터 이가 나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왕은 평범한 아이가 아니다며 큰 인물이 될 것이라 여겼고 궁예의 곁을 떠날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궁예를 못마땅하게 여긴 왕비가 내관을 불러 궁예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하도록 했습니다. 괴상한 흰 빛이 하늘에 닿는 것과 이가 이미 나 있었다는 것은 나라에 화를 불러올 나쁜 징조이니 부디 궁예 왕자님을 기르지 말라는 내관의 말에 신하들이 계속 불길해하자 왕의 마음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경문왕은 결국 궁예를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군사들이 궁예가 있는 방으로 들이닥쳤습니다. 궁예의 어머니가 아이를 껴안았지만, 군사들은 아이를 빼앗아 바깥으로 던졌고 마침 처마 아래 숨어 있던 유모가 아이를 받아 안고 온 힘을 다해 도망쳤습니다. 새벽이 밝아올 때는 멀리 달아나 시골까지 와 있었습니다.




궁예의 상처


날이 밝아 아이를 살펴본 유모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의 눈에서 흘러나온 피가 아이의 온몸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받을 때, 유모의 손가락에 아이의 눈이 찔렸던 겁니다. 그날 이후로 유모는 시골에 숨어 살며 궁예를 키웠습니다.  


어린 궁예에게 유모의 이야기는 놀랍고도 슬픈 것이었습니다. 궁예는 유모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궁예는 유모에게 세상에 나가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겠다며 유모와 작별을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궁예가 처음 도착한 곳은 세달사라는 절이었습니다. 궁예는 큰스님에게 간청하여 스님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면서 가난하고 핍박받는 백성들의 생활을 알게 되었고,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버린 신라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때면 마음 속에 미움이 되살아나 괴로워했습니다.




뜻을 펼치는 궁예


세월이 흘러 궁예도 어른이 되었고 세달사를 떠나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들을 세상에 펼쳐 보이고 싶어졌습니다. 마음이 정해지자 궁예는 서둘러 절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죽주에 군사들을 가지고 있는 기훤을 찾아갔습니다. 이 때 신라는 힘이 약해져 지방까지 힘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힘있는 사람이 군사를 일으켜 지방 여러 지역을 차지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기훤도 그중에 하나였습니다.  


궁예는 높지 않은 자리였지만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러자 궁예에게 감동하여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오만하고 성질이 횡포한 기훤으로 인해 죽주에서 뜻을 펼칠 수 없음을 안 궁예는 자신을 따르는 군사들을 데리고 북원의 양길에게 갔습니다.  


양길은 궁예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흔쾌히 맞아들였고 궁예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군사 삼백 명을 내어주며 치악산 지역을 빼앗아 오라 명했는데 궁예는 그 지역을 빼앗았음은 물론, 동쪽으로 나아가 영월, 평창, 울진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강릉의 명주성까지 차지하게 되었을 때에는 삼백 명이었던 군사가 삼천오백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궁예가 이렇게 항상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앞장서서 백성들을 위했기 때문입니다.


궁예는 백성들의 재산을 절대로 빼앗지 말며 적일지라도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이를 어길 시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엄벌에 처한다는 엄격한 군율을 세워 백성들을 보호했습니다. 또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상을 내리고, 죄를 지은 사람은 엄한 벌로 다스려, 언제나 공평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궁예는 가는 곳마다 백성들에게 환영을 받았고 사람들은 승려복을 입은 궁예를 '미륵' 이라고 불렀습니다.




후백제의 왕 견훤과 왕건


한편, 남쪽에서는 신라의 왕도를 지키는 장군인 견훤의 세력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힘을 잃어가는 신라로 인해 관리들의 횡포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백성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자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견훤의 군대는 서남쪽으로 진격하여 많은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리고 완산주에 진출하여 후백제를 세우고 왕이 되었습니다.


궁예도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일대를 장악하고, 송악에 태봉이라는 나라를 세워 왕위에 올랐습니다. 화가 난 양길이 군사들을 이끌고 쳐들어가려고 했으나 이를 알아챈 궁예가 왕건을 보내 먼저 습격하여 양길의 세력을 북원에서 완전히 몰아 냈습니다. 궁예는 왕건에게 군사를 내주어 후백제를 공격하여 남쪽 지역으로 영토를 넓혀 나갔고 왕건의 수군을 이용하여 금성을 빼앗아 백제를 양 방향에서 공격해 들어갔습니다. 왕건의 거듭된 승리에 기분이 좋아진 궁예는 그에게 큰 벼슬을 내려 주었습니다.



궁예의 몰락

궁예는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수도를 철원으로 정했습니다. 강한 힘을 갖게 된 궁예는 점차 변해 갔습니다. 궁예는 자신이 하늘이 내린 미륵이라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호화로운 황궁을 짓게 했으며,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신하는 무참히 죽여 버렸습니다. 또한 수천 명의 백성들을 황궁 짓는 일에 동원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생활이 가난해지고 원망하는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지만, 궁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권세와 향락이 궁예의 눈과 귀를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궁예는 날이 갈수록 더욱 포악해져 갔습니다. 정신이 흐려지자, 궁예는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되살아났습니다. 매일 술로 마음을 달랬지만 응어리진 복수심은 풀리지가 않아 신라의 왕족을 모두 잡아 죽이라 명했고 궁예의 말 한 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살해되었습니다.  


또한 궁예는 스스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습니다. 보다못한 궁예의 부인이 궁예에게 간청했지만, 궁예는 오히려 자신의 부인과 두 아들마저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잔인한 궁예를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어질고 현명한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고 궁예를 내쫓기 위해 궁궐로 몰려들었습니다. 궁예는 미리 눈치채고 성 밖으로 달아났지만, 결국 백성들에게 잡혀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어려서 버림받은 궁예는 자라서 왕이 되었지만, 결국 자신의 나쁜 행실 때문에 몰락하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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