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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라화랑 김유신 일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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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과 김춘추

화랑 김춘추는 폐위된 진지왕의 손자로서 용모와 언변이 뛰어나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사냥터에서 김유신과 마주쳤는데 서로 유명한 화랑임을 알아보고 친분을 쌓게 됩니다. 그들의 목표는 둘 다 삼국통일으로 같았기에 수련에 정진하며 우애를 쌓았습니다.

 

진평왕 54년(632년)에 진평왕이 죽고 성골 출신 귀족 중에 남자가 없어 대가 끊기는 상황이 되자 신라 27대 임금은 덕만공주가 왕위를 잇게 되었습니다. 바로 최초의 여왕이 된 선덕 여왕이었습니다. 김유신은 성골 출신의 대가 끊겨 선덕여왕의 사촌 여동생 승만 공주(진덕여왕) 외에 왕위를 이을 사람이 없으니 진지왕의 친손자인 김춘추가 왕이 될 것을 예견하였고 자신의 여동생을 김춘추에게 시집보내려 했습니다. 실제로 훗날 김유신이 왕으로 추대하여 김춘추가 왕이 되었습니다. 김유신의 첫째 여동생 보희가 예사롭지 않은 꿈을 꾸었는데 둘째 동생인 문희에게 꿈의 내용을 말해주자 문희는 언니에게 꿈을 샀고 이 꿈은 훗날 왕비가 되는 길몽이었습니다.

 

며칠 후 김유신과 김춘추는 김유신의 집에서 축국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경기 중 김춘추의 옷 앞섶이 찢어졌습니다. 김유신은 여동생 보희를 불러 꿰매기를 부탁하였으나 둘째동생인 문희가 대신 옷을 꿰매게 되었습니다. 김춘추는 문희의 바느질하는 모습을 보고 반하였고 문희는 김춘추의 아이까지 임신하였으나 이미 처자식이 있는 김춘추는 첩을 들이기를 고민하며 망설이기만 했습니다. 이에 김유신은 꾀를 내어 선덕여왕의 행차가 자신의 집앞을 지날 때 문희를 화형 시킨다는 핑계로 불을 피웠습니다. 선덕여왕은 김유신의 집임을 알고 신하에게 자초지종을 알아오라 명하였고 그 내용을 알게되어 김춘추에게 큰 실망을 하였습니다. 결국 김춘추는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혼인하였고 문희는 훗날 문명 왕후가 되어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을 낳았습니다. 이 일로 김유신과 김춘추는 잠시 사이가 나빠지기도 했었습니다만 김유신은 신분 상승으로 인해 더 많은 공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골품제도와 무열왕이 된 김춘추

신라의 골품제도는 매우 엄격한 신분제도 였습니다.  신분에 따라 많은 것들이 규제되었고 왕족인 성골과 진골, 그다음은 귀족들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중 제일 높은것은 부모가 모두 왕족인 성골이었는데 성골만이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진골은 부모 중 한 사람이 왕족인 경우를 말하며 이들은 가장 높은 벼슬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632년 진평왕이 죽고 왕위를 이을 성골 출신의 남자가 없자 덕만공주가 선덕여왕이 되었고 그 뒤를 사촌동생인 성골 출신 진덕여왕이 왕위를 이었습니다. 그 후 성골 출신의 여자가 없어 진골 출신의 남자인 김춘추가 왕위를 이어 신라 29대 태종 무열왕이 되었는데 첫번째 진골 출신 왕이었습니다.  그 뒤로 성골 출신의 왕이 없어지고 진골 출신에서 왕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말목을 벤 김유신

김유신은 15세 때 진평왕 31년(609년)에 화랑이 되었습니다. 삼국통일의 꿈을 안고 학문과 무예에 정진하고 있던 때 천관이라는 기생에게 마음을 빼앗겨 기생집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신분이 낮은 처녀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유신의 어머니인 만명부인이 엄하게 꾸짖자, 다시는 천관을 찾지 않겠다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술을 마시고 말을 타고 집으로 향했던 김유신은 정신을 차려보니 천관의 집 앞이었습니다. 김유신의 말은 항상 가던대로 천관의 집으로 간 것입니다. 김유신은 말에서 내려 사랑하는 말의 목을 단칼에 내려쳤습니다. 그러고는 반가움에 달려나온 천관을 뒤로한 채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 뒤 천관은 김유신의 무정함을 원망하며 '원사'라는 노래를 지었는데 가사와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지 않던 김유신을 기다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신라의 재상이 된 김유신은 천관의 넋을 기려 그녀의 집터에 절을 세우고 천관사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유명한 일화인데요 사실 김유신 자신에게 화를 내야 할것을 말의 목을 베었기에 말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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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장군 김유신 일화

김유신의 탄생과 성장과정 신라의 진평왕 17년, 김서현의 집에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김서현의 아내 만명 부인이 첫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아이의 얼굴에서 밝은 빛이 나고 팔다리가 튼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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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충효동에 있는 김유신 장군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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