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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다의 왕 장보고 ▶젊은시절의 장보고와 정년 바닷가 작은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바다에 들어간 젊은이들이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었을지도 모른다며 돌아서는데 바다에서 무언가 솟아오르자 사람들은 깜짝 놀랬습니다. 한 젊은이가 헤엄쳐 나왔고 뒤따라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도 바다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장보고와 정년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감탄해서 소리를 질렀지요. 장보고와 정년은 신라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자랐습니다. 장보고와 정년은 헤엄실력 뿐 아니라 싸움 실력도 좋았어요. 특히 정년은 바다 속에서 50리를 숨쉬지 않고 헤엄칠 수 있었지요. 지는 것을 싫어하는 정년은 언제나 장보고에게 지지 않으려고 덤벼들었습니다. 그러나 지혜롭고 믿음직한 장보..
고구려 살수대첩 을지문덕 ▶수나라 황제 양제의 고구려 원정 고구려 영양왕(고구려 제26대 왕) 때 일입니다. 수나라 황제가 직접 백만 명이 넘는 군사들을 이끌고 고구려 국경에 닿자 영양왕은 신하들과 의논을 하였습니다. 이에 한 신하가 수나라는 큰 나라이니 지금이라도 사신을 보내 예를 갖춰 화해를 청하자고 했고 신하의 힘없는 말에 왕은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그때 을지문덕 장군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는 건 안 될 말이며 이렇게 적들에게 우리 땅을 내어 주다가는 나중에 한 뼘의 땅고 남지 않을 것이라 말했지요. 적들은 먼 길을 오느라 지치고 피곤할 것이며 고구려 지형을 잘 이용하고 용기를 내어 싸운다면 백만 명의 적이라도 물리칠 수 있다 자신하였습니다. 항복하자고 했던 신하들은 얼굴을 들지 못했고 영양왕은 장군..
백제의 마지막을 지킨 계백장군 ▶전쟁에 대비한 계백장군 계백은 백제 의자왕(백제의 마지막 왕) 때 장군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날마다 산과 들을 누비며 말타기, 활쏘기, 칼쓰기 등 여러가지 무술을 갈고 닦았습니다. 소년답지 않은 강한 의지와 튼튼한 몸, 게다가 지혜까지 뛰어나 전쟁놀이에서 항상 대장 노릇을 했지요. 계백은 청년이 되자 무예원(무술을 가르치는 곳)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무예원의 스승들은 무술뿐 아니라 나라를 사랑하고 올바른 인간이 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계백은 어른이 되면 훌륭하고 용감한 장군이 되어 백제를 침입해 땅을 빼앗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신라에 대항할 것이라 다짐했습니다. 백제의 의자왕은 젊지만 효성이 깊고 용맹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향락에 빠져 나라일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어느..
고구려의 장수 연개소문 ▶'대대로' 에 오른 연개소문 연개소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고구려에서 대대로(오늘날의 국무총리)의 벼슬을 지냈습니다. 연개소문은 어려서부터 씩씩하고 의젓해서 전쟁놀이를 하면 늘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때로는 싸움이 격해져 몸에 상처가 나기도 했지만 연개소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자신만만해 했지요. 어른들은 연개소문의 용맹스러움을 칭찬하기도 했지만 그의 겸손하지 못함을 염려하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연개소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맏아들인 연개소문이 대대로가 되어야 했지만, 많은 귀족들은 그의 성격이 포악스러운 점을 들어 반대했습니다. 연개소문은 귀족들의 얘기를 듣고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후 귀족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무릎을 꿇고..
신라시대 화랑도 ▶화랑도 화랑도는 신라시대의 청소년들이 모여 수양을 쌓던 단체입니다. 화랑들은 평상시에는 산과 강을 돌아다니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학문과 무술을 닦으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길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싸움터로 나아가 용감히 싸웠습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영토를 넓히는 데에는 화랑의 역할이 컸습니다. 화랑도는 신라 제24대 진흥왕 때 만들어졌습니다. 애국 소년단인 화랑도에는 지도자격인 화랑이 있었고 그 밑에 낭도가 있었습니다. 화랑도가 지켜야 할 '세속 오계' 는 원광 법사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첫째,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길 것. 둘째, 효성으로써 부모를 섬길 것. 셋째, 믿음으로써 벗을 사귈 것. 넷째, 싸움에 나가서는 물러서지 말 것. 다섯째, 살아 있는 생물은 함부로 죽이지 말..
신라장군 김유신 일화 ▶김유신의 탄생과 성장과정 신라의 진평왕 17년, 김서현의 집에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김서현의 아내 만명 부인이 첫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아이의 얼굴에서 밝은 빛이 나고 팔다리가 튼튼한 것이 그야말로 장군감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아이의 등에 일곱개의 별 무늬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던 것입니다. 김서현의 부인은 간밤에 별들이 품으로 쏟아지는 꿈을 꾸었는데 아마 아이가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는가 보다며 기뻐하였습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무예가 뛰어나고 총명하여 온 나라 사람들이 소년의 뛰어남을 칭찬했습니다. 소년은 말타기나 활쏘기 등, 무예라면 못하는 것이 없었으며 글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곧 신라의 모든 청년들이 부러워하는 화랑이 되었습니다. 화랑은 신라때 민간..
신라의 첫 여왕이 된 선덕여왕 선덕여왕 진평왕의 뒤를 이어 덕만공주가 신라의 제27대 왕이 되었습니다.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어서 따님이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분이 바로 신라 최초의 여자 임금인 선덕여왕입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신하들과 백성들은 만날 때마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마음을 놓았답니다. 선덕여왕은 그 어떤 왕 못지않게 지혜로웠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여왕의 현명함에 혀를 내두르며 칭찬했습니다. 백성들은 진심으로 여왕을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세 가지 일을 예언한 선덕여왕 - 첫 번째 선덕여왕은 16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동안 여왕은 세 가지 일을 미리 알아맞혔답니다. 그중 첫 번째가 모란꽃 이야기입니다. 당나라를 방문했던 사신이 당나라에서 여왕께 선물을 보내었다 아뢰고..
원효대사와 해골물 ▶원효대사 스님이 되다 원효대사의 어릴 때 이름은 서당입니다. 신당이라고도 불렸습니다. 하루는 그의 어머니 꿈에 하늘의 별똥별 하나가 품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어머니는 얼마 후에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는데, 이 때 오색 구름이 온 마을을 뒤덮었습니다. 장차 큰 아이가 될 징조라 기뻐했지만 어머니는 원효대사를 낳은 지 며칠 만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원효는 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원효대사는 다섯 살이 되자 할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열두 살이 되던 해에는 화랑(신라 시대 청소년의 민간 수양단체)이 되었습니다. 원효대사는 머릿속에는 항상 죽음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화랑으로서 나라일에..